20년 8월 4일(화) 오후/뉴포트 시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쌀쌀 맞게 지나쳐 가는 사람, 정중하게 거절 하는 사람, 욕을 하거나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 등.. 주님이 허락하신 수많은 만남들 가운데, 오늘도 보석과 같이 귀한 한 영혼, 복음 앞에 가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반응하는 영혼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십대 아이들 네 명을 만났다. 세 명은 전도지만 받고 시간이 없다며 지나쳐 갔는데, 남은 한 명의 여자 아이는(데미) 복음에 대해 들어 보겠노라며 멈춰 섰다.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시고, 귀한 영혼과의 만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복음을 나누었고 함께 영접 기도를 드렸다. 만화 전도지를 주며 꼭 읽어 볼 것을 권했다. “주님, 데미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며 주님을 구주로 고백했습니다 자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자매가 주님을 더 깊이 만나고 주님과 늘 함께 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브리스톨에 있는 필리핀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제니퍼를 만났다. 동행하던 남성 분이 기다려 주지 않고, 앞서 걸어 가시는 바람에, 복음을 더 깊이 나눌 수는 없었다.

엠마라는 자매를 만나,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 복음에 대해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다. “주님, 오늘도 복음을 전하는 자리로 불러 주시고, 사랑하시는 영혼들에게 영원한 기쁨의 소식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을 들은 영혼들을 주님 손에 올려 드리오니, 받으시고 그들을 주님의 거룩한 백성과 자녀 삼아, 영광 받아 주옵소서.”

20년 8월 18일(화) 카디프 시내 전도

오늘 아침 묵상 말씀은 고린도전서 1:10-17절이었다.

고전1:17절,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로 번역 되어 있는 부분을 영어 성경으로 읽어보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능력을 잃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참 이상하다. 보통은, 십자가의 능력을 세상에 딜리버리 하기 위해서, 그것을 전하는 사람이, 어떻게든 지혜롭게, 설득력 있게, 말이 되게, 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 생리인데.. 오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복음의 능력을 가감없이 드러내기 위해서, 바울은 오히려, 말의 지혜로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마치 말의 지혜가 되려, 복음의 진가를 가리우는 거추장스러운 장식인 듯이..

그만큼, 바울 안에는, 복음이면 충분하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으리라. 사람이 거들지 않아도, 추가, 부연 설명 더하지 않아도, 조바심 내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요 능력이라는 말씀.

휴가 이후, 다시 십자가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 첫 날. 오늘 주신 말씀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십자가의 능력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오히려 말의 지혜로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했던 바울의 고백이, 나에게도 경험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복음을 전했다.

‘말원’이라는 무슬림을 만났다. 처음엔 그가 그리스도인이거나, 복음을 듣고 싶어 하는, 준비 된 영혼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걸 보고는, 먼저 다가와 “너는 지금 무얼 하고 있냐? 왜 십자가를 지고 가느냐?”고 물어 보았기 때문이다.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독하게, 아예 작정을 한듯,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부인하는 발언과 질문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예수가 어째서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며 따졌다. 그러나 ‘신앙에 대해 변증하자면, ‘이성적, 지식적’으로 맞붙어 그를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의 말을 존중하며, 경청하는 척 했지만, 사실 내 머릿 속에서는 그의 말에 일일히 대응할 전투 준비가 이미 한창 진행 되고 있었다. 심장 박동수가 빨라 졌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나에게는 ‘알라 해드 노 선’이라는 ‘폭탄?’도 들려 있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이제 나의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첫째, 머릿 속에 정리 된 그 생각들을, 영어로 표현해 내려니, 이게 문제다. 둘째, 하나님이 오늘 아침에 주신 말씀, 그 말씀이, 이제 막 역공을 퍼부으려는 나에게 제동을 거는 듯 했다.

“사람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주님은 이 말씀을 다시 떠오르게 하심으로써, 나의 템포에 제동을 거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나는 그와의 논쟁에 감정적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도를 하는데 왜 심장박동수가 빨라 지겠나. 그것은 상대를 설득하고 바꾸고, 제압하고 이겨보겠다는 나의 비복음적 태도 때문이었다. 복음전파는 사랑을 전하는 것이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사랑과 긍휼로 바라보아야 할 전도 대상자는, 그렇게 어느새 내가 이겨야 할 대상이 되어 있었고.. 하나님은 그런 나의 태도를 드러내심으로써, 내가 그와 싸우는 논쟁으로 이끌려 가지 않도록 해주셨고, 오히려 그를 위해 전심으로 주님 앞에 기도하게 해주셨다. 빨라졌던 나의 심장 박동이 다시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말의 지혜로, 이겨버려서, 할 말이 없도록 만들어 버려야만 될 것 같았던, 그를 향한 나의 태도가, 그를 향한 한 없는 긍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내 앞에서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다. 그는 알았을까. 나의 눈빛과 마음이 어느 순간인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그의 말이 한 텀 끝났다. 나는 다른 말 하지 않고, 그에게 사랑을 꾹꾹 눌러 담아, 복음을 전했다. 물론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의 짧지 않은 대화 시간을 통해,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할 시간을 벌 수 있었고, 그것이 나에게 큰 감사가 되었다. “하나님, 말원 같은 사람들은, 말의 지혜로 설복 당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하나님, 그러나 사람으로써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말원을 만나게 하심은, 나로 싸워 그를 이기라 하심이 아니라, 그를 위해 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라 하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거짓과 어둠에 사로잡힌 그에게 참 빛을 비추어 주세요..”

크리스틴 과 존을 만났다. 이들은 무신론자고, 빅뱅과 진화론을 믿는단다. 그러면서 자녀들이나 아이들에게 절대로 종교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힘 주어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릴적 부모에 의해 카톨릭 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 너무 힘이 들었다고 했다. 예수를 믿음은, 종교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누리는 것이라고 나누면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끝내 거절했다. 만약 종교를 한 가지꼭 가져야만 한다면 불교를 선택하겠단다.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주님, 어둠과 무지 가운데 있는 저들에게도, 은혜의 빛,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세요.” 끝내 복음을 다 전하지 못한 아쉬움에, 작별 인사를 나누다가, “그런데 너희 이름은 어떻게 되니?” 라고 물었더니, 머쓱해 하면서, “크리스틴” 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되려 나에게 묻는다. “너, 크리스틴이라는 내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아?” 나는 답했다. “몰라,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녀가 답했다. “우리 엄마가 지어준 이름인데, 예수를 따르는 여자 라는 의미야.” 옆에 있던 존도 말했다. “내 이름도, 성경에 나오는 것 같던데?” 주여.. 철벽과도 같이, 성경과 복음 이야기는 안 들으려던 저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묻고, 답하는 과정 가운데, 마음이 열린 것이다. 그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했다. “너네, 그 이름대로 반드시 하나님이 만나 주실거야. 기억해. 예수님의 이름을. 오늘 우리의 만남을, 반드시 너희에게 예수님을 만나는 그 때가 올거야. 그래서 그 이름대로 너희는 살게 될거야.” 아멘.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그 이름대로, 그들에게 믿음의 복 허락해 주실 것을 믿는다.

알루익이라는 형제를 만났다. 어디서 아프리칸 리듬의 드럼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한 건장한 흑인 남자가 쓰레기 통을 두드리며 드럼을 치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자, 대뜸 자신이 먼저 할 말이 있다며 입을 열어, 생전 처음 들어보는 괴상 망측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구약과 신약 성경을 인용하기도 했다. 중간에 끊을 수 있는 타이밍을 여러 차례 살폈지만,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서 있었는데, 나중에는 머리가 띵 해질 지경이었다. 괜히 말을 걸었나 싶었다. 오늘은 이 땅의 엄연한 현실, 거짓과 미혹의 영에 사로 잡혀 신음하는 영혼들을 만나게 하심으로써, 진리의 빛을 더욱더 간절히 사모하게 되는 시간을 허락하신 것 같다. 주님, 알루익에게도 진리의 빛 비추어 주셔서 모든 무지와 어둠이 물러가고, 생명이신 주님만을 구주로 고백하는 은혜가 형제에게 있게 하옵소서.

필리핀에서 온 시실리아, 젠, 그리고 젠의 아들 야곱을 만났다. 드디어 만났다. 그리스도인을!! NHS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단다. 크리스찬이라고 하기에 한 번 더 복음의 내용을 나눴다. 그녀는 내가 나눈 복음에 모두 동의하고, 전심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사람이, 진리이신 예수를 알고 믿을 수 있음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시실리아는, 길에서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참 귀하다면서 격려해 주었다.

전도하는 동안, 젊은이 두 명이 십자가를 들고 서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전도지를 요청하여 가져간 일이 있었다. 그렇게 먼저 다가와 복음이 담긴 전도지를 달라 하니, 어찌나 고맙고, 또 기쁘던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도지를 주면서,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자신이 직접 전도지를 읽어보겠다며 찡긋 인사를 하고는 훨훨 날아가 가버렸다는 사실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십자가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와서, 전도지를 요청하여 받아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구원의 선한 일을 이미 시작하고 계시다는 사인이 아닐까? 그들에게 말로 복음을 증거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 가운데 쉬지 않으시고 일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하나님, 오늘도, 주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복음을 나누게 하심 감사합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여,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오늘 만나게 하신 이들도, 주님을 알게 되는 은혜, 믿을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되길 간절히 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1:21)

20년 8월 25일(화) @카디프 시내 전도

Storm Francis의 영향으로, 전도하는 내내 강풍이 몰아쳤다. 다행히도 간간히 지나치는 소낙비 외에, 큰 비는 내리지 않아서, 전도를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루마니아에서 온 ‘모세’라는 형제(Uber Eats 배달을 함)를 만났다. 복음을 전하자, 루마니아에 있을 때, 자신의 부모님이 ‘오순절’ 교회를 출석 하셨다고 했다. “너는 예수님을 믿느냐”고 묻자, 눈을 굴리며 조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요즘엔 일을 하느라, 바빠서 교회를 통 못 나가고 있다”고 했다. 형제에게 “교회를 출석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지만, 신앙이란 것은,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것 이상의 문제이며,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누리는 것”이라고 한 뒤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나누었다. 대화 하는 중에, 형제의 폰 알람이 계속 울렸는데, 아마도 배달을 요청하는 메시지였던 것 같다. 바쁜 와중에도, 복음에 귀를 기울여 멈추어 선 형제가 너무나 귀했다. 마지막으로 오늘, 전해 들은 ‘복음’을 네가 믿느냐고 묻자, “내가 믿는다”고 답한 형제를 축복하며 기도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타지 생활을 하고 있는 형제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고, 좋은 믿음의 공동체로 이끌어 주셔서, 믿음 안에 형제가 자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매튜라는 젊은 형제를 만났다. 전도지를 건내며, “복음에 대해 들어 보았느냐” 묻자, 자신은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바람이 워낙 세차게 불었던 상황 이라, 거리 한 가운데서 지나가던 사람을 불러 세워 놓고, 뭔가 대화를 나눈 다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옷깃을 여미며,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여 지나쳐 가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귀를 열고, 복음을 듣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매튜’ 였다. 그는 여전히 “나는 믿을 수 없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걸음을 멈춰 세우시고, 복음을 듣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이미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음을 믿는다. “하나님, 매튜에게 계속하여 복음을 들려 주세요.”

조디 라는 젊은 형제를 만났다. 전도지를 받고서는 대뜸 나에게, “너, 여호와의 증인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자, 자신의 부모님은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너는 어떻냐?” 라고 물으니, 입을 삐죽 거리면서 조금 고민하는 것 같더니,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하나님께서 조디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세상과 하나님, 사람에 대하여 그가 가진 여러 가지 질문들을 시작으로, 복음을 나눌 수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조디가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주님 앞에 쏟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였다. 참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 계속 고민해 보겠다는 형제를, 주님 손에 올려 드린다.

오늘도 자격 없는 죄인을 불러,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세워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만난 귀한 영혼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과 사랑과 기쁨의 교제 가운데 사는 하나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기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