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9월 4일(금) 오전 카디프 시내 전도

수차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내 눈에 담기는 분주한 도심과 많은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참 된 주인이신 하나님, 그 크신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떠올리고 붙들기 위함이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근거하여,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도를 하는 내내, 틈이 나는대로 하늘을 올려다 보며, 하나님게서 전날 주셨던 말씀(이사야49:14-19)과 오늘 새벽 주신 말씀 (골로새서 4:2-6절)을 붙잡고, 기도를 드렸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주님은 이 땅을 향해 분명히 말씀 하셨다. “내가 이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기 원한다. 나는 이들을 반드시 회복시킬 것이다.” 오늘 새벽 주님은 “Devote yourselves to prayer with an alert mind and thankful heart.” (기도에 힘쓰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라. 골4:2)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향한 바위 같은 믿음은, 오직 기도로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믿음을 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한 귀한 형제를 만나게 해주셨다.

이름은 스티븐, (성경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와 이름이 같았다) 올해 49살인 그는, 두 눈이 거의 실명 직전이다. 의사들은 그가 30살이 되기 이전에, 완전히 시력을 잃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지금까지, 다행히도, 아직 약간의 시력은 남아 있어서, 형체는 알아 볼 수 있는 정도란다. 그는 미술가다. 조각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데, 카디프 베이에서 전시회를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예술가라 그런지, 성량이나 목소리 톤에서부터 섬세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오래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웨일즈 출신인 그에게, 하나님께서 토마스 선교사를 통해 우리 민족에게 베푸신 은혜를 나누었다. 그는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라며 귀를 기울였다.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전하자, 자신과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겠느냐고 묻는다. 형제 가운데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이고 선교사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내 안에 실존하는 죄와 그 죄로 인한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자, 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하며, 그 구원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그가 너를 사랑하시기에, 오늘 나를 보내어, 너에게 이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라고 전하며, 복음 앞으로 형제를 초청했다.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함께 예수님을 초청하는 영접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친 후, 그가 말했다. 성경 이야기를 나에게 조금 더 들려 줄 수 있겠느냐고, 저기 벤치로 자리를 옮겨서, 더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스데반 집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과 바울의 이야기를 그는 처음 들어 본다고 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가, 사울의 회심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스데반 형제를 통해 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그를 격려하고, 축복했다.

그는 내가 다니는 교회가 어디냐고 물었다. 거리가 조금 멀어서, 너가 만약 원한다면, 카디프에 있는 좋은 믿음의 공동체를 소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스티븐의 영혼을 붙잡아 주시고, 그가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공동체로 이끌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 드린다. 그리고 그의 두 눈을 치료의 손으로 만져 주셔서, 그의 시력이 회복되는 기적을 보기 원한다. 이사야 49장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싶다. “주님! 주님을 신뢰합니다. 말씀 대로 역사하옵소서! 스티븐의 영과 육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이름 모를 한 형제는 십자가를 지고 전도하는 나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영광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찬양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라고 격려해 주기도 하였다. 매 순간 놓치지 않고, 주님을 의식하며 살고 싶다. 주님이 주신 말씀을 온전히 믿고, 그 말씀의 성취를 간절히 소망하고 싶다. “주님, 저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순전한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 도다.” (시147:10-11)

20년 9월 16일(수) 뉴포트 시내 전도

감기몸살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아침 기도회가 끝나고, 서둘러 첫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니 어느새 오전 09:20분. 이제 결정해야 할 때였다.
‘오전 전도를 나가느냐 마느냐’

내 안에서는 ‘이미’ 오늘 전도 하러 나가지 않아도 될 나름의 합리적 명분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이중환 선교사님께서 몸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쉬라고 하셨잖아 대표선교사님 말씀을 들어야지’,
‘잘 생각해봐. 아직 몸이 완전히 다 나은게 아닌데, 오늘 오전에 나가서 무리했다가, 더 아파지면, 하루 쉬고 나을 걸,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거 아니야?‘
‘아니야, 너는 선교사잖아. 너의 건강 보다 지금,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안전이야. 지금 이 코로나 시국에 나가서, 다른 사람 한테 괜히 피해 줄게 뭐 있어. 그건 더 나쁜 거야. 감기 옮기고, 다른 사람 아프게 하는게 선교사가 할 일은 아니잖아?‘

그러면서도, 몸은 어느새 푸근한 이불 속이다,
점점 더 ‘고상하고’ ‘그럴 듯한’
포장 된 핑계들이 나를 둘둘 감쌌다.
‘그래, 오늘까지 쉬자, 그리고 다 나아서,
나가자‘ 라는 나름의 결론과 함께
무겁게 내리누르는 눈꺼풀에 기꺼이
항복하려 할 그 때..

“어제 아파서, 전도 쉬었으면, 오늘은 몸이 어떻든 나가야지!”
벼락과도 같은, 그 분의 음성,

‘아내였다.’
큰 소리로 응수하면,
‘소리 칠 힘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전도 하러 가도 되겠다‘ 할까 싶어.
작은 소리로, 돌아 누우며 웅얼 거리듯 말했다.
“아.. 아직 몸이 무겁고 아픈데..”

“아파도 나가야지!”

그렇게.. 나가게 되었다. 전도의 현장으로!
아내님에 의해 거의 반 강제로 끌려나간 셈이다.

차에서 내려, 십자가를 들고 센터로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오늘은 그저 조용히 십자가 들고,
기도하면서, 전도지만 나눠주다가 와야 겠다‘고.

아내는 유모차를 끌고,
어린 하은이와 함께, 전도를 하러 갔고,
나는 느릿 느릿 걸으며
(최대한 아픈 티를 내면서)
전도지를 전했다.

오늘 따라 사람들이, 전도지는 또, 왜 이렇게 잘 받는지,
가지고 간 전도지가 거의 다 떨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전도할수록,
내 안에서 나도 모를, 힘이 계속해서 솟아 나더라는 것이다.
느릿 느릿 하던 발걸음도 빨라지고, 한 두 마디가, 다시 세 네 마디가 되고
결국 주님께서 허락하신 영혼들에게 전도지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자리까지,.. 주님이 이끌어 주심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인내와 온유하심이 참 놀랍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불러 주셔서, 일을 맡겨 주셨다 하면,

왕명을 받는 자로써, 마땅히
열일 제쳐두고, 황송하게 여기면서, 굽신 굽신, 감사로
전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디.. 감히.. 하나님께서 부르셨는데도..
나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마지못해 응해 드린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나 같은 사람도.. 모질게 대하지 않아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참아 주시고, 내 안에 다시
거룩한 소원을 조용히 불러 일으켜 주셔서,

스스로 깨닫도록 해주시니.. 그리고 다시 감사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니 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초등학교 5학년 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
보통은 아이 혼자 시내에 나오는 일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근처 어딘가에 부모님이 계시겠거니 싶었다.
아이에게 전도지를 건넸다. 아이는 전도지를 유심히 읽으며 걸어갔다.
아이가 점점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데,
어디를 봐도 그 아이의 부모님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작은 남자 아이는, 저 멀리 혼자 터벅 터벅 걸어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홀로 전도지를 읽으면서 걸어가던 그 아이의 뒷 모습에,
아들 하선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래서 괜시리
마음이 짠 하고, 목에 메었다. ‘아..전도지만 달랑
주는게 아니라, 아이를 불러 세워서,, 복음을 들려 줬어야 하는데..!‘
뒤늦은 후회로 땅을 쳐도..이미 아이는 저 멀리 가버린 뒤였다..

현장은 언제나 이렇다.
나와 보면 안다. 나오지 않고, ‘전도 해야지’ 라는
생각만 으로는 절대 모른다. 그런데 마음이 내키든, 내키지 않든,
자원하는 심령이 있든 없든, 나와 보면, 보인다.

들판이 희어져 추수할 것 많지만,
추수할 일꾼이 없도다..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살갗에 와 닿는다.

그 아이의 뒷 모습이 계속 내 눈에 선 하게 남아
마음이 아팠다. ‘내가 몸 좀 아픈거. 그게 뭐라고..’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들려 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님, 저 아이를 꼭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 아니면
저 아이가 꼭 복음을 들을 수 있게 해주세요. 누구를 통해서라도..
그래서 저 아이가 주님과 함께 하는 아이가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기도 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복음 앞에 준비 된 영혼
조던과 맬리사 커플을 만나게 해주셨다.

사람의 노력과 최선, 율법이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다.
기쁨으로 겸손히, 복음을 받는 그들의 모습.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예비하신 자들은
여지 없이, 복음 앞에 이처럼, 겸손히 반응하며 나아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에게 기쁨과 감사로
고백 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렸다.

오직 은혜다. 그들과 함께 영접 기도를 드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음 담아 축복하였다.

오늘도 오직 주님의 은혜의 역사였음을 고백한다.
십자가 들고, 생명과 영광의 복음을 전하는
자리로 불러주시고, 이 귀한 일에 동참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오늘도 주님이 하셨습니다. 아멘.